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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조사의 화
2017-09-03 20:29:20 29  


인구 조사의 화

삼하 24:1-9

 

유진 중앙 교회 주일 오전 예배

93, 2017

 

지난 주일에는 다윗이 드린 찬양에 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세가지의 은혜를 노래하였습니다.

 

1.    여호와는 다윗의 반석과 피난처가 되심을 노래하였습니다.

2.    여호와는 다윗의 구원이 되심을 찬양하였습니다.

3.    다윗이 드리는 또 하나의 찬양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심을 노래한 것입니다.

 

그가 다스리는 이스라엘은 안정이 되고 왕국은 탄탄대로를 가는 듯이 보였습니다.

마음의 긴장이 풀리게 되자 사단은 다윗에게 올무를 놓고 시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윗 생전에 많은 공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단에게 넘어진 두가지의 흠결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충신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고 우리야 장군을 전쟁터에 내어 보내 전사하게 한 것이었습니다.

 

또 한가지는 인구 조사를 하게 한 것입니다.

 

함께 읽은 본문은 그의 통치 후반기에 실시한 인구 조사에 관한 기사입니다.

 

삼하 24 1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저희를 치시려고 다윗을 감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이 본문에 의하면 다윗이 인구 조사를 한 것은 우연이 아님을 알 수있습니다.

무슨 내용인지는 기록하지 않고 있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노여워하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그의 백성들의 인구를 조사하였습니다.

그 일은 다윗에게 큰 화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역대상 21 1절에는 같은 사건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이 두 본문을 보면 다윗이 인구 조사를 한 것은 마음에 충동을 받아서 한 것임을 알 수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다윗은 하나님께 큰 재앙을 당하였습니다.

삼일 동안에 7만명의 백성이 목숨을 잃는 끔찍한 온역이 이스라엘을 강타하였습니다.

그만큼 다윗의 인구 조사는 하나님의 마음을 격노시켰기 때문입니다.

 

다윗보다 훨씬 오래 전 사람이었던 모세는 두번 씩이나 인구를 조사한 일이 있었지만 그로 인하여 모세 자신이나 백성들이 재앙을 당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모세가 한 인구 조사는 하나님의 마음을 노엽게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인구 조사는 백성들을 보다 더 잘 관리하게 하고 그들의 가나안 여정을 방해하던 적대 세력들을 물리치는 일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 시대에 행한 인구 조사는 달랐습니다.

 

인구 조사를 하도록 사단은 다윗의 마음을 격동시켰습니다.

 

다윗이 인구 조사를 하게 된 동기와 목적은 하나님을 노하게 하였습니다.

 

사단은 다윗에게 인구 조사를 하도록 마음을 격동시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일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의 충실한 신하였던 요압은 왕에게 말합니다.

 

2 Samuel 24:2-3 3 요압이 왕께 고하되 `이 백성은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신하의 눈에 비친 다윗의 인구 조사는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재차 인구 조사를 독촉하여 유다와 이스라엘에 거주하던 백성들을 9개월 20일 동안 조사하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9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 Samuel 24:8-9 9 요압이 인구 도수를 왕께 고하니 곧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팔십만이요, 유다 사람이 오십만이었더라

이 말씀을 보면 다윗이 인구 조사를 한 목적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 목적은 싸울만한 군인들의 숫자를 파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다윗의 인구 조사를 기뻐하지 않으셨는 가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다윗이 실시한 인구 조사를 보시고 노하셨습니까?

 

1.    다윗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던 자만과 교만한 마음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향하여 노하신 것은 인구 조사 자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인구 조사를 하게 된 배경, 즉 동기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동안 무수한 전쟁을 치루었지만 그의 군대의 숫자나 군사력을 앞세워 싸우지 않았습니다.

 

골리앗과의 전쟁에서도 그랬고 모압고 암몬과의 전쟁에서도 그랬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긴 것이나 아람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도 이스라엘의 군대의 숫자가 더 우세하여 이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항상 다윗의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셨기 때문에 승리할 수있었습니다.

 

그는 이제 든든한 왕국의 강력한 제왕이 되었고 좋은 궁전에서 화려한 삶을 살았습니다.

 

언젠가 부터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 보다는 국력을 더 신뢰하는 마음으로 기울어 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신을 대적할 만한 어떤 나라나 왕이 사라지자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츰 교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떤 중대한 일을 앞에 두었을 때 간절하게 기도하던 그의 마음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인구 조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지라도 전 같으면 그 일을 신하에게 명령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기도 보다는 자기의 생각과 감정에 따라서 중대사를 결정하였습니다.

충신의 권면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서서히 불신앙의 사람으로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하여 감각이 무디어 졌습니다.

 

자신은 그러한 변화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신앙의 사람이 가장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자기는 전과 같다고 착각을 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언젠가 부터는 기도의 생활이 사라져 버립니다.

중요한 결정을 자기 감정과 생각에 따라서 쉽게 합니다.

신앙의 친구의 권면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단의 충동에 쉽게 넘어갑니다.

 

그는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겸손하지를 못합니다.

 

자신의 결정이 최상이라고 착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이 성공 후에는 방심합니다.

교만해 집니다.

힘을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히스기야 왕은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부터 그는 교만해 졌습니다.

왜냐하면 이웃 대국 바벨론까지도 다윗을 부러워하고 화친의 사자들을 보낼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그를 방문한 바벨론의 사자들을 맞이한 히스기야는 아주 교만해 졌습니다.

급기야 그는 나라의 비밀인 왕궁의 보물 창고의 문을 열고 그들에게 자랑스럽게 구경시켰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군사 기밀까지 그들에게 보여 줌으로 힘을 자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히스기야에게 진노하셨습니다.

 

어느 시대 누구나 자랑은 교만을 불러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성공한 후에 전쟁에 나가 싸울 만한 군사의 숫자를 헤아릴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더 겸손해야 하였습니다.

군인의 숫자를 파악하고 안심하고 자랑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이사야 2: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가치가 어디 있느

 

다윗은 자기를 위해서 전쟁터에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백삼십만이 된다는 보고를 받고 흐뭇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숫자나 힘을 보고 즐거워 하는 동안 오히려 하나님은 노여워 하심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다윗이 실시한 인구 조사를 보시고 노하셨습니까?

 

2.    다윗의 마음 속에 자라고 있던 불신앙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에게 초심에 가졌던 믿음이 그대로 있었다면 굳이 군인들의 숫자를 파악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이룩한 나라의 안정을 지키고 더 나아가서 필요하다면 이웃 국가를 침공해서 라도 원하는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군인들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 위하여는 군사력이 얼마나 되는 지 알고 싶어 하였습니다.

 

다윗 곁에서 늘 지켜 보았던 요압 장군은 다윗의 이런 마음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섬겨온 다윗은 전쟁에 나갈 때 아군의 숫자를 보고 나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필요하다면 하나님은 얼마든지 다윗에게 힘을 보태 주심을 보아 왔습니다.

 

그는 이렇게 다윗에게 말합니다.

 

“…이 백성은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오화께서 백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
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3)

 

다윗보다도 신앙이 어린 요압이 보아도 다윗의 인구 조사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시면 백배라도 더하게 하실 터인데 굳이 사람의 숫자를 헤어보게 하는 일에 대하여 요압은 반대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불신앙의 고집을 꺽지 않았습니다.

강행군 시켰습니다.

 

수많은 주변 국가의 군대를 물리치고 이기게 해 주신 하나님의 능력을 더 이상 신뢰하지 못하는 다윗이 처량합니다.

 

나님의 능력을 저버리고 자기 수하의 병력만 많으면 이길 알고 이스라엘 중에 칼을 뺄만한 숫자를 보고 기뻐한 것은 그의 불신앙의 모습입니다.

 

성도들이 정녕 기뻐해야 할일은 많은 군대 때문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천하무적의 대왕이요 믿음의 대장이었던 다윗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려고 하지 않고 자기 병력을 의지하려 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보다도 세상의 힘을 의지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능력을 더 크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때는 어두운 밤 중이었습니다.

 

배가 갈릴리 바다 한 가운데 쯤 갔을 때 갑자기 풍랑이 일기 시작하였습니다.

배가 뒤집히기 않도록 안간힘을 쓰면서 사경을 헤메는 데 어디서 이것을 보셨는 지 바다위를 성큼 성큼 걸어오신 분이 계셨습니다.

바로 주님이셨습니다.

 

놀라움에 당황하던 제자들을 보시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니 두려워 하지 말라

이 말을 듣고 용기를 얻은 베드로가 주님께 말합니다.

주님이시라면 저도 주님처럼 바다위를 걸어 가게 해 주십시오.”

주님은 베드로에게 물위를 걸어 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는 물에 빠지지 아니하고 성큼 성큼 주님 처럼 바다위를 걸어서 주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물이 베드로를 삼키지 못했습니다.

마치 육지 위를 걷는 것 같았습니다.

 

베드로는 그 순간 눈 앞의 거친 파도와 바다 물결에 시선이 꽃혔습니다.

더 이상 주님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그 순간 주님께 대한 믿음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의 발은 물 속을 빠져들어갔습니다.

 

성도가 살 길은 믿음을 굳게 붙잡는 것입니다.

바다 물결을 바라보고 나아가면 빠져들고 맙니다.

 

우리가 바라 볼 대상은 위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믿음의 눈으로 바라 보아야 합니다.

 

어느 날 예수께서는 보기를 원하는 소경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9:29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그 눈들이 밝아 진지라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되게 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다윗처럼 하나님을 의지함 보다도 사람의 숫자를 계산하고 더 의지한다면 주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들을 축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진노 중에 나타난 다윗의 회개입니다.

 

3.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다윗은 회개의 사람이었습니다.

만일 그가 회개할 줄을 몰랐다면 그는 하나님의 진노 중에서 멸망을 당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구 조사후에 얼마가지 아니하여 자신이 큰 죄를 지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인구 조사 후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아니하심을 알았습니다.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미련한 것인가를 깨달았습니다.

삼하 24 10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이 고백은 다윗이 비록 어리석게 하나님의 노를 사는 행동을 하였지만 곧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옴을 보여 줍니다.

 

만일 그가 끝까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시키고 회개하지 아니하였다면 그는 영원히 멸망을 당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가지 아니하고 곧 자신의 어리석은 판단과 행동을 시인하고 회개하였습니다.

다윗을 회개의 사람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받았을 때도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인구 조사가 얼마나 잘못된 행동인가를 깨닫자 곧 바로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용서해 주시는 대신에 징벌을 받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세가지의 옵션을 제시하셨습니다.

 

한가지는 7년간의 기근을 당할 것인가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근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온 나라에 임할 흉년을 말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선택은 삼개월 동안 대적에게 좇겨 다닐 것인가입니다.

다윗을 추격하는 대적에게 좇겨서 숨어다니는 것은 다윗이 이미 수없이 겪은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사울에게, 아들 압살롬에게 너무나 수치스러운 일을 겪었기 때문에 이 일만은 자신이 가망하기 어려운 고통이었습니다.

마지막 세번 째 선택은 삼일 동안에 온역이라는 재앙이 닥쳐 오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선택해야 하는 이 세가지는 어느 것 하나라도 쉬운 재앙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피할 길은 없습니다.

 

그는 7년간의 자연 재해나 3개월 간 사람들에게 도망을 다니는 것 보다도 차라리 하나님께 직접 고통을 겪는 재앙을 선택하였습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사흘 간의 온역으로 죽은 백성들의 숫자가 7만명이나 되었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고통이었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댓가가 이렇게 혹독하리라고 생각조차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해결의 길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회복시키는 길은 회개의 길 밖에 없습니다.

 

비록 그 길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그 길 만이 죄인이 살길입니다.

회개없이는 회복이 있을수 없습니다.

 

다윗은 침상을 눈물로 적시는 회개의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다윗을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축복의 문을 다시 열어 주셨습니다.

다윗의 범죄의 댓가로 예루살렘을 공격하려는 천사를 하나님께서 만류하셨습니다.

그리고 재앙을 내리심을 뉘우치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다윗은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죄의 댓가로 재앙을 주셨지만 하나님의 마음도 편하지 않으셨습니다.

곧 뉘우치셨습니다.

 

선지자 하박국은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박국 3: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진노 중에서라도 긍휼을 잊지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행위를 본다면 우리는 하루도 이 세상에서 복을 받고 살아 갈 수없는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진노 중에서라도 긍휼을 베푸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오늘도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빕니다.

 

아멘

 


 













  사흘 동안의 전염병
  다윗의 감사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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