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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한 믿음
2019-12-08 10:28:48 357  



순전한 믿음
 
욥기2:1-10


12월 8일, 2019년
유진 중앙교회 주일 오전 예배


 
우스라고 하는 땅에 살았던 욥은 순전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순전하다라는 말의 영어 표현은 “blame less” 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순전하다(tam, tummah)'는 히브리 말은 "경건하다"는 말입니다.

"완전하다"는 말입니다.
"순결하다. 흠이 없다"는 말입니다.
"결백하다. 무죄 하다"는 말입니다.
불순물이 혼합되지 않은 것을 의미합니다.

흠 잡을 데 없는 신앙이란 말입니다.
순결한 믿음, 순수한 믿음, 언행이 일치 하는 믿음이란 말입니다.

이런 믿음을 소유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떤이는 열심히 기도는 하는 데, 믿음이 작은 사람이 있습니다.기도는 열심히 하는 데 실천하는 행동이 따르지 못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입으로는 좋은 말을 하는 데, 행함이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욥은 동방에 살던 부잣집 주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많은 재산을 하루아침에 다 잃어버렸습니다.

웬만한 사람같다면 믿음을 내어 버렸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는 거지가 되었어도, 오히려 하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애지중지 양육한 보배 같은 10남매 자녀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리고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모진 병고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무서운 사탄의 시험도 잘 참아 이겼습니다.

 아내의 배반에도 순전을 굳게 지켰으며, 친구들의 비방에도 끄떡하지 않았습니다.
욥이 전무후무한 재난 가운데서도 조금도 동요 없이 신앙을 굳게 지킨 것은 그의 신앙이 순전한 신앙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욥1:1).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욥1:8, 2:3)
하나님께서는 욥의 순전한 믿음을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습니다.
 

욥은, 이 같은 순전한 신앙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그는 여하한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서 있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욥의 순전한 신앙이란 어떤 것인가를 살펴 보겠습니다.


 (1) 순전한 신앙이란, 번영의 때에도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생각하기를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으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옛 말에도 "등 따시고 배부르면 배은망덕한다"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염려하였습니다.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 버릴까 하노라"(신8:12-14).

사람이란 번영의 때에 신앙생활을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로는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습니다.

배가 부르면 좋은 옷을 입고 싶어 합니다.

돈이 있고 부하게 살게 되면 세상 허영에 들뜨기 쉽습니다.

축복과 번영이 좋은 것이기는 하나 그것이 충성스런 신앙생활을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와 정반대의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여름날의 하루는 겨울날의 열흘보다 더 많은 음식을 상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역경의 때에 신앙을 잃어버린 자들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경보다는 번영 때문에 신앙을 잃은 예가 훨씬 많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씀은 역시 진리입니다(마19:24).

욥은 축복과 번영의 때에도 한결 같이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그는 동방의 부자였습니다(욥1:3).
그에게는 양이 7,000이요, 약대가 3,000이며, 소와 암나귀가 각각 500이었고, 그 외에도 종들이 많았습니다.

번영과 축복은 욥의 일신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동서남북에 우글거리는 가축들은 욥을 흐뭇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의 많은 종들은 열심히 일하여, 그의 재산을 늘려 주었습니다.
그는 하늘을 향하여 천은을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부가 반드시 축복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욥의 경우에 있어서는 자랑할만한 축복이었습니다.
그는 10남매의 자상한 아버지였습니다.
그는 만인의 추앙받는 우스 땅의 족장이었습니다.

그는 또 죄가 무서워 벌벌 떠는 자였습니다.

혹시 자녀들이 범죄 할까 항상 염려하였습니다(1:5).

행여나 하나님께 대하여 배은망덕할까 두려워하면서 자녀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곤 하였습니다.

욥은 영화와 번영의 때에도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그는 부귀 때문에 하나님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지육림 속에서도 세상의 연락에 취하여 신앙심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평안하고, 행복할수록 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이것이 그의 구김살 없고, 순전한 욥의 신앙이었습니다.


 (2) 순전한 신앙이란, 역경의 때에도 겸손하게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인간 세상에는 재난이 그치지 않습니다.
염려할 일은 많고(눅10:14), 시험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약1:2).

불행이나 우환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가려고 합니다.
작은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큰 문제가 뒤따르고, 겨우 한 고비를 넘고 나면 태산준령이 앞을 가로막습니다.

 개천을 건너고 나면 장강대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아침인가 했더니 어느새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을 걸으며 방황하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고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울고 살게 합니다.

어떤 이는 그것을 이기지 못하여 주저앉기도 하고, 어떤 이는 땅을 치며 통곡합니다. 어떤 이는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 하고, 자포자기합니다.

그러나 욥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처참한 역경의 때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번영의 때에도 우쭐대지 않았지만, 환난의 날에도 한결 같이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욥의 신앙이 순전하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변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당한 환난은 너무나 크고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끄떡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장한 신앙입니다.
그 거부가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도둑맞고, 벼락 맞고, 약탈당했습니다.

"재물과 보물의 주위에는 근심과 슬픔이 우글거리고 있다"더니 과연 그러하였습니다.

돌고 도는 돈은 벌면 됩니다.

가난은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10남매를 한꺼번에 잃다니‥‥ 하나만이라도 살아남았다면‥‥

만일 그에게 신앙이 없었다면 미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간증을 들어 보세요,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말하면서 결코 범죄치 않았습니다(욥1:21).

욥의 환난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온 몸에 악창(Shechiyn)이 만발했습니다(욥2:7).

그의 피부는 염증이 생기고 터지고, 아팠습니다.
앉아 있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누워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죽지 못해 사는 처지였습니다.
욥은 철저하게 망한 것입니다.

 영화의 날에 줄지어 찾던, 이웃도 친구도 일가친척도 다 떠나고 말았습니다.

돈 없고, 자녀 없고, 병든 몸이 어디 간들 환영받겠습니까만, 욥의 경우는 너무나 슬픈 지경입니다.

설상가상으로 함께 살던 부인마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하였으니 하늘과 땅 사이에 이 보다도 서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욥이 누리던 부귀영화는 일장 출몽이었습니다.

 만군을 호령하던 족장의 몸이 어린아이의 조롱거리가 되었고, 홍포에 감기웠던 옥체가 재무더기 속에서 살아야 했고, 호화롭던 귀인이 문둥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욥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욥2:10).

사탄은 욥을 넘어뜨리려고 두 번 세 번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욥은 끄떡도 하지 않았습니다.

욥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은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의 신앙이 순전했기 때문이요,
둘째는 그가 하나님만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욥19:25-26).

그가 만일, 변하는 세상의 것을 바라보았다면 욥도 변하거나 흔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변치 아니하는 하나님만 바라보며, 그만을 믿고 의지했습니다.
욥은 이 신앙으로 재난을 이기고, 불행을 이긴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이러했으면 좋겠습니다.

등불은 어두운 밤을 밝히기 위하여 필요합니다. 지팡이는 험한 길을 헤쳐 나가기 위하여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환난의 밤을 당해 기도의 불을 꺼버리고 험산준령을 당하여 신앙의 지팡이를 집어던지고 맙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빌1:29).

우리의 앞길이 순란하지 못하다 할지라도 욥처럼 겸손하게 하나님을 잘 섬기십시다.

 (3) 순전한 신앙이란, 까닭 없이도 하나님을 잘 섬기는 신앙을 말합니다.

본문에 “까닭없이” 라는 표현은 “ without any reason” 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따지기를 좋아하는 듯 합니다.

왜 선악과를 못먹게 하였습니까?

주일을 왜 지켜야 합니까?

봉사는 왜 해야 합니까?

사람들의 의견은 가지 각색입니다.

하지만 욥은 까닭없이, 이유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했습니다.

그야 말로 참된 순종입니다.
 
하나님은 욥의 신앙을 칭찬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몸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욥1'8).

그러나 사탄은 하나님께 항변했습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욥1:9)

욥의 신앙은, 까닭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축복하고 붙잡아 주시니, 욥이 그것 때문에 믿는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욥에게 베푼 은혜를 그친다면, 욥의 신앙도 그치고 말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우리 주위에는 까닭 때문에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병이 나아서 예수 믿는다고 합니다.
사업이 잘 되어서 믿는다고 합니다.
부모가 믿으니 따라서 믿는다고 합니다.
직장 때문에 예수 믿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런 것들 때문에 예수 믿는다면 그 신앙은 위험한 신앙입니다.

왜냐하면, 그 까닭이 사라질 때, 신앙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까닭 때문에 믿을 것이 아니라, 예수 때문에 믿어야 합니다.

사탄의 고소를 더 들어 봅시다.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루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사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욥1:9-ll),

하나님은, 욥의 신앙이 까닭 때문이 안님을 증명하기 위하여, 그 모든 소유물을 사탄에게 맡겼습니다.
사탄은 여지없이 재산과 자녀들을 쳤습니다.
그 결과로 거지가 되었고, 자녀들을 다 잃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욥은 이 같은 축복을 다 거두어 가버려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전보다도 더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욥은 세상의 축복 때문에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욥의 축복은 그의 신앙의 까닭이 아니었습니다.
만일 그가 세상의 번영 때문에 하나님을 섬겼다면 그 번영이 사라졌을 때 그의 신앙도 가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의 동기가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가버렸어도 그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재물도, 자녀도, 건강도, 부인도, 친구도, 다 가버렸으나 그의 신앙은 그대로였습니다.

욥의 신앙의 동기는 오직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이 신앙이 귀합니다. 이기적인 동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변하는 세상의 것이 신앙의 뿌리라면, 그 신앙은 언젠가는 넘어지고 맙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교회에 나오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 교회에도 아무 까닭 없이 신앙 생활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부모 때문에 교회에 나오는 자들이 아닙니다.
직분 때문입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도 아닙니다.

순전한 신앙은, 어떤 까닭 때문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좌우됩니다.

 
예수님의 다음 말씀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요6:26).

"성도 여러분, 그러나 욥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번영 때문에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닙니다.
역경 때문에 물러서지도 않았습니다.
까닭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 때문에 믿은 것입니다.
이것이 순전한 신앙입니다.

고속도로에도 굽이 치는 곳이 있습니다.
굴곡이 있습니다.
하루에도 낮이 있고 밤이 있습니다.
하물며 사람의 한 평생에 희노애락의 요철이 없겠습니까?

이런 것 때문에   요동하는 신앙은 순전한 신앙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현상 때문에 웃고 우는 신앙도 좋은 신앙이 아닙니다.

욥처럼 흔들리지 않는 신앙이 좋은 신앙입니다.

그 같은 신앙이 순전한 신앙입니다.

순전한 신앙인이 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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